사고

 | 단상
2011. 5. 2. 00:41

옆에서 이야기 하시던 분이 그렇게 홀연히 찰나의 순간에 가셨다.

나는 살아남았고

누군가는 떠났다.

나는 이런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겠다.

엉덩이는 얼얼하고

가슴은 먹먹하다.

웃어야 할 이유는 수만가지 이지만

정작 나를 위한 이유라는 것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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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귀가 있는 자

 | 단상
2009. 9. 1. 23:48

나는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귀를 기울이는가

혹여 누군가의 이야기를 지나치게 쪼개어 그 균열을 파고들려 하지 않는가

누군가가 계속 이야기 하는 것이 견딜 수 없어 화제를 바꾸곤 하지 않는가

이야기의 매듭을 항상 나로 귀결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깜냥에 넘치는 고민들로 인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자리가 없지 않는가.


나는 과연 들을 귀가 있는 자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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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냅니다. #1

 | 단상
2009. 6. 6. 01:20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요.

몇달동안 달고 다니던 잔기침도 멎었고

질질거리던 콧물도 끝을 보이는거 같네요.

게다가 요즘은 거짓말 처럼 생활이 만족스럽답니다.

가끔은 그렇지 않을때도 있지만

이제 제 생활을 즐겁도록 만들 수 있는  내적인 힘이 조금씩 자라남을 느낍니다.

그게 어디서 자라는 힘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이것이 완연히 제 몸을 지배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더 즐거운 사람이고 싶어요.

이런 생각을 하면

후회가

기대가

한꺼번에 밀려옵니다.

미안하고

반가워 해야겠죠.

누군가에게는 사치스러운 생각일수도 있는

누군가에게는 낯간지러운 말 일수도 있는

누군가에게는 유치한 흔해빠진 클리셰일 수도 있는

이런 말들이 제가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인 것도 같습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모두 미안하고, 반갑습니다.

저에게도 미안하고 반가워 해 주세요.

부디

건강과 평화와 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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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 play play

 | 단상
2009. 3. 17. 15:49


내가 처음 음향기기를 접한 시점은 중학교 1학년때 였다.

친구들 사이에서 마이마이 같은 미니카세트를 가지고 있는 것은 대단한 자부심이었고

난 마이마이보다 조금 더 폼이 나는 소니 워크맨을 가지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소니 워크맨을 보면 거의 훔치고 싶을 정도로 갖고 싶었고 심지어 테잎을 넣고 뺄때 생기는 소리마저

소니는 마이마이보다 폼이 나는 것 같았다.

자세히 어떤 이쁜짓을 했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얼마 후에 소니 워크맨은 내 손에 들려있었고

그때부터 등하교 길은 물론이고 쉬는 시간 주야장천 테입은 돌아갔다.

그로 인해서 많은 노래도 알게되었고 음악이라는 삶의 윤활유에 대한 예찬을 하게되었던 것 같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군대에는 3보이상 승차라는 말년병장을 위한 우스갯 소리가 있지만

내 경우는 3분 이상 걸릴 거리이면 무조건 엠피쓰리를 챙긴다.

시간이 흘러 카세트에서 시디피로 시디피에서 mp3로 기계도 바뀌었고

듣는 음악의 스펙트럼도 보다 넓어졌다.

뭐 그렇다고 이런 블로그에 내가 듣는 음악이 이런거야 라고 시시콜콜 자랑질 하고 싶은 마음은 없고,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오늘 문득 자전거 타고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귀에 뭔가를 듣고 집으로 오면서 들은 생각인데

"이제 음악을 듣고 싶을때 들어야겠다. "

짬이 나면 귀에 뭔가를 꽂고 있던 습관이 15년 정도 되다 보니

시시때때 음악을 듣게 되고

때때로 내 감정과 관계 없는 트랙들이 나를 괴롭히거나 혹은 무심하게 흘러갔다.

친구들과 킥킥대며 웃다가 안녕하고 헤어져 돌아가는 길에 포티쉐드 같은 노래를 듣는다거나

마음이 아픈데 레드 핫 칠리 페퍼스를 듣는다거나 하는 일은 실제로 감정에 많은 혼란을 준다.

그렇다면 그 무드에 맞는 음악을 들으면 되지 않소

라고 말 할수도 있겠지만

매순간 살아가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 음악이 필요한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적당한 bgm으로 흘려버릴 정도의 음악이라면 그다지 듣지 않아도 무방하다,

3분에서 5분 정도의 트랙에 따라서 기분이 좌지우지 된다면 그것만큼 자괴감 드는 일도 드문 것 같지만

실제로 많은 시간 이런 작용이 반복 된다면 그것은 그 순간 자신의 감정을 명경하게 되돌아 보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음악이 영향력이 큰 매체여서 그런 것도 같고 말이다.

우스갯 소리지만 김동률 같은 다장르를 추구하는 아티스트의 앨범을 첨부터 끝까지 들으면

양념을 많이해서 맛이 없어진 찌게를 먹는 기분이랄까... 사실 뭘 들었는지 기억도 안난다.

내가 mak ear 라서 그런가 ㅎㅎㅎ

뭔 씨도 안먹히는 이야기를 계속 지껄이나 싶겠지만

음악을 듣는다면 이제 특별한 시간에 시간을 내어 듣고 싶고

기분이 특별히 좋다거나 나쁜날엔 듣고싶지 않다. 라는 말이다.

거 참 별거 아닌데 어렵게 말하네 그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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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 단상
2009. 1. 23. 02:37
새벽 6시에 잠이 들었다.
그냥 별일 한 것은 아니고 어제 술을 마셔 바로 자면 살찔거라는 생각에 늦게 잔다는게 잘 시간을 놓쳤다.
아홉시에 일어났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먹고 커피 마시고 어머니 차에서 들으실 시디 한장을 구웠다.
간신히 정신을 챙기고 어머니랑 같이 아버지 산소에 갔다.
아버지 산소까지 풀타임으로 운전한건 처음이었다.
차안에선 훈훈했다. 구운 시디를 다행스럽게도 어머니가 좋아하셨고
노래도 따라부르고 바보같은 친구들과 내 이야기도 했다.
또 성질급한 모자 앞을 가로막는 모범운전자를 추월하며 욕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이윽고 시골에 도착.  할아버지 할머니 작은아버지 산소에 들렀다가
아버지 산소에 도착했다.

올해 우리집은 좋은 출발을 했는데 그건 순전히 광주에서 주부생활을 하는 내 덕분이 아니라
8년만에 의사면허를 취득한 누님 덕분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 무덤 앞에서 고맙다고 하셨다. 덕분에 누나 잘 가르칠 수 있었다고...
난 온전한 감정으로 그 장면을 못 보겠길래 산소 끄트머리에서 찔끔거리며
지난 8년을 생각했다.
어머니 일생에 있어서 가장 모진 8년이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주식문제로 소송이 오가고 어머니는 그 와중에 수술을 두번이나 하셨으니...
그 한을

난 아주 조금밖에 이해 할 수 없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만난건 29년전 쯤이다.
20년을 만났고 20년 후 헤어져 9년이 되었다.
오늘 산소에서 그 가늘고 긴 모진 인연의 끈으로 이어진 부부가 서로 토닥거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머니는 오늘 지난 8년동안 당신 등에 지고 계셨던 가장으로서의 짐을 아버지에게 돌려드리는 듯 했다.
이걸로 한결 어머니가 밝아지셨으면 좋겠다.

집으로 와서
나는 자고
어머니는 친구를 만나시고
일어나서 밥을먹고
요즘에 하시고 계신 어머니 영어공부를 도와드렸다.
어머니는 F발음이 어렵다고 화를 내셨다.
우리 엄마는 욕을 맛깔나게 하시는 편인데
아마 F발음도 영어 욕을 알려드리면 잘 하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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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제사.

 | 단상
2009. 1. 15. 01:18
오늘은 아버지 제사였다.

벌써 8번째 제사를 지내지만

언제나 이날이면 우리 집에는 묘한 공기가 흐른다.

풍습이라면 풍습이지만

절을 올리고 나서 삼촌들이랑 빙 둘러 서서 2001년도 아버지가 한창 아프셨을때 이야기를 하곤 한다.

햇수가 더해지지만 같은 이야기가 회자 된다는 사실이 안타깝지만...

그런 이유로 매해 같은날 같은 사람들이 모여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8년이 흘렀지만

사진은 나이를 먹지 않았다.

정장입은 모습과 거칠게 합성을 한 아버지의 싱싱하고 어설픈 영정사진 앞에서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를 조금씩 닮아가는 나에 실루엣이

그렁그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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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햅니다.

 | 단상
2009. 1. 1. 01:28
지금부터 20년 뒤 여러분은 잘못하고 후회할 일보다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일이 더 많을 겁니다.
그러니 밧줄을 던져 버리십시오. 안전한 항구에서 벗어나 멀리 항해하십시오. 무역풍을 타고 나가십시오. 탐험합시다. 꿈을 꿉시다.발견합시다.

- 마크 트웨인

새해에도 Bon Voyage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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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from Abbeyroad

 | 단상
2008. 12. 25. 22:45



좋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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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하게 걷기

 | 단상
2008. 11. 19. 23:14

시작

"타박타박"

"아… 발을 끌지 않아야 하는데… 안 그럼 물집 잡힐 텐데…"

부어오른 왼쪽 발목 때문에 걷는 리듬이 깨졌다. 잠시 쉬어갈 겸 발이나 식히기로 했다.

아무도 없는 버스 정류장에 앉아 양발을 풀고 망중한에 빠진다.

가끔 지나는 차 소리 빼고는 지나치게 고요하다.

"이 동네 할머니들은 장보러 안가시나…?"

혼자 소리 내어 말하고는 이내 입을 닫고 빨개진 발바닥을 본다.

홍두깨로 백대는 맞은 것처럼 발바닥이 울그레 풀그레 한다.

누렇게 익어 고소하고 푹신한 카스테라 더미처럼 보이는 논을 바라보며 걸리버가 되어 눕는 상상을 한다. "쩝쩝" 입맛도 다시고 꺼끌한 입안을 미지근한 물로 게웠다.

"그럼 다시 가볼까"

올 초가을 국도를 걸었다. 누가 떠민 것도 아니고 꼭 그래야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가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그것은 조금 거창하게 말해서 ‘사명’이 되었다. 그리하여 올해 하반기에 계획되어 있던 모든 일정을 정리하고 겁도, 준비도 없이 무작정 집 대문을 나서 줄곧 걷기 시작하였다. 처음 며칠은 의욕이 넘쳐 육체적인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탓에 머릿속은 온통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고 평소에 접하지 못하였던 생경한 풍경과 경험들에 대해 차분하게 묵상할 수 있었다. 그 중 몇을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의 장면으로…

3년 전 어느 날 검도를 마치고 선배와 함께 버스에 올랐다. 겨울 무렵이었는데 버스엔 여기저기 삶의 변주를 끝마치고 난 악기들과 같은 모습의 사람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선배와 나는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이야기들은 모두 청춘의 고단함으로 귀결 되었다. 선배는 이야기 했다. "여기 버스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살아있는 것 같니?" 이야기를 듣고 버스안의 잿빛 풍경을 무신경하게 바라보고 대답했다. "겉으로 보기엔 그러네요…" 당시 버스에 타고 있던 분들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이야기 이지만 그 순간 내 눈에 비친 버스는 그 자체가 하나의 미완의 조각인양 무미하였다. 둘은 이내 입을 굳게 다물었고 우리 역시 돌덩이가 되어 무미한 풍경에 동화 되었다. 서울에 온 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드는 생각이었지만 그 순간 서울이 참 싫었고 그곳에 발 디딘 내가 싫었다. 흐린 구름사이로 겨우 새어드는 빛이 고맙기는커녕 저주스러웠다. 그저 어느 하루의 우울로 치부해 버리기엔 도시는 사람들의 얼굴에 자주 날카로운 직선의 차가움을 옮기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너무도 매끄러워 돌기하나 찾기 힘든 플라스틱 뭉치에서 나는 그 돌기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 역시 스스로 돌기임을 자처한다. 하지만 그 돌기도 결국 플라스틱 뭉치에서 발견한 고춧가루 하나 정도의 맵고 끈적함을 지녔을 뿐이다. 특별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인간의 존재감을 고취시킨다면 나는 그것에 집착했으나 결국엔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하였다. 내 주변엔 돌기들 천지였고 자잘한 돌기들이 모여 평평해져버려 결국 난 그것을 녹이지도 못한 채 묻혀 버렸다.

하지만, 무한의 억겁이 창조해낸 자연이 압도하는 힘은 내가 감당하거나 측량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루 종일 걸어도 질리지 않는 풍경은, 결국 내가 걸어온 길이 지도에서 측정하기 힘들 정도로 미미하다는 절망감 속에서도 언제나 나를 껴안았고 하나의 풍경으로 받아들여 주었다. 여행 초반의 빨리 족적을 남기고픈 가냘픈 욕망은 뚝뚝 흐르는 땀방울에 삭고 살랑이는 바람에 찢겨 이내 형체를 감추었고, 나는 그저 하나의 풍경으로 평범하지만 압도적인 장면 속에 하나의 점으로 소실되어 그것 속에 빨려들었다. 한 발짝 한 발짝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 의미도 없는 그 걸음에 대해 자연과 자연 속의 길은 어떤 것도 의미 없는 것 없다고 말하는 듯 가슴을 열어보여 주었다. 그리고 난 그냥 그 자리에 있으면 그걸로 족했다. 그것은 새로운 의미의 촉매였고 자그마한 발화였다.

몇 개의 선

사람은 심적으로 유약해지면 표징들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길 위에서 철저하게 약자였던 나 또한 몇 가지 표정에 집착했다. 예를 들면 도로에 나 있는 표지판이랄지, 잠을 청할 교회나 성당의 비죽 솟아있는 교회나 성당의 첨탑, 그리고 죽죽 그어진 차선이 그랬다. 특히 차선이나 국도의 경우 갓길이 많아 도보 여행자에게 여유를 허락하지만 지방도로의 경우 갓길이 흔치 않아 걸으면서 이 선에 신경을 세워야 한다. 특히 여유가 없는 도로에서 커브라도 만날라 치면 차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기도가 절로 나온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차들이 알아서 잘 피해가기 때문에 그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아침안개가 낀다거나 하는 경우 매우 곤란하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었는데, 서천에서 군산으로 넘어가는 아침에 손전등을 들고 2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 길을 걸으며 안개등이 다가올 때 마다 흠칫거리며 풀숲으로 뛰어드는 유난을 떨었던 적이 있다. 그렇게 안개를 헤쳐 나가다가 차가 오는 바람에 풀로 발을 디디는 순간 물컹한 것이 밟혀 소스라치게 놀랐다. 방금 로드킬에 당한 듯한 동물의 시체를 밟았던 것이다. 순간 너무도 당황해 뛰다시피 자리를 벗어나고 말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날 아침 그 동물이 나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쭈뼛 돋았다. 여행의 후반부엔 너무도 많은 로드킬을 봐서 무덤덤해 졌지만 발밑의 감촉을 상상해 볼 때면 지금도 자릿하다. 도보여행의 위험에 대해 말하려는 건 아니다. 그리고 반반한 배우가 나와서 "먹어보면 딱 한우인지 알죠" 라고 말하는 병신육갑치는 캠페인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날 이후 몇 번이고 그 감촉을 떠올리며 날 이 길로 나오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몇몇 떠나간 이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의 감정의 선을 넘어 육으로 떠나간 이들과 내가 말의 선을 넘겨 마음 안에서 죽여 버린 몇몇 이들… 내가 차를 피하며 밟았던 풀숲에서 흠칫 거리며 뛰어오르는 메뚜기들을 보면서 미안하다. 미안하다 몇 번이고 되뇌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 선은 어디까지 일까? 그 깊이, 그 넓이를 조심스레 가늠하며 천천히 경계의 확장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과 사람

길을 걸으며 얻는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는 바로 사람과의 만남일 것이다. 혼자 걷는 일이 생각보다 녹록치 않고 고되기에 지인으로부터의 연락이 더없이 정겨워 지는 것은 물론이거 니와 우연한 만남과 대화는 짜릿한 즐거움을 준다. 주로 사람을 만나게 되는 장소는 잠자리와 버스 정류장인데, 내가 누구이며 왜 길을 걷는지 등의 다소 귀찮은 초반의 통과의례를 거치고 나면 간단하게나마 서로를 알게 될 기회가 생긴다. 대화중 가장 기분 좋았던 내용은 "사우 삼고 싶네~" "이쁘게 생겨가지고 왜 고생이여~" 이 정도이고, 가장 맥 빠지게 했던 내용은 “요새 젊은 것들은 놀기를 좋아해서 탈이여~ 십 원짜리 한 장 나오는 것도 아닌데 뭣 헐러 그 지랄을 해~” 이 정도였다. 하지만 시골 어르신들은 보통 따뜻한 눈길로 핀잔을 주시기 때문에 저 정도는 웃어넘길 수 있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손주들 자랑, 장에서 사온 물건들 구경, 나의 안부를 걱정해 주시는 따뜻한 말씀을 듣노라면 걷는 도중 솟는 치열함은 이내 부드러움으로 바뀌고 만다. 종종 안타까운 사연도 듣고 있으면 마음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고는 하지만 어르신들의 주름어린 웃음이 "이정도 살았으니 그런 일 정도는 괜찮아"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 그걸로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내 외로움에 지치고 곤궁해져 이 걸음을 멈추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면, 걸음을 멈춘 지금 그 분들이 더없이 소중해지고 진정 마음에서 우러난 감사가 떠오른다. 이 자리를 빌어서 길에서 해매는 나를 도와주시고, 이야기 해주시고, 재워주시고, 따듯한 밥 지어주시고, 그것도 모자라 가는 길 먹으라고 몇몇 먹을거리를 챙겨주시기까지 한 많은 분들께 고마운 마음 가득하다.

신의 달력

예전에 ‘신의 달력에는 오늘만 있고, 악마의 달력에는 어제와 내일만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제와 내일이 오늘을 사는 것에 전혀 도움을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후회와 두려움에 약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carpe diem" 현실을 직시하고 즐긴다는 것,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더욱 유명해진 이 말은 이미 많은 젊은 사람들의 메신저 아이디로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하디흔한 일종의 클리셰가 되었다. 그 정확한 이유를 꼬집어 말하기 힘들지만, ‘현실을 즐긴다’는 의미가 ‘현실을 직시한다’는 의미에 앞서느라 그저 빛 좋은 개살구 정도가 되어버리지 않았나 싶다.

사실 길을 걷는 것만큼 carpe diem 할 수 있는 일도 드물다. 사방은 고요하고 혼자 끝이 없는 길을 걷다가 버스 정류장에서 휴식을 취할 때, 나에게 길을 걷는 이유가 오직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것 밖에 없었다면 오는 버스를 뿌리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길을 걷는다는 의미는 목적에 도달하고자 하는 그것과 다르다. 힘에 부쳐 길바닥만 보며 걷다가 무심결에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이는 풍경들, 오가며 만나게 되는 사람들, 그리고 내 안에서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상념들, 이 모든 것과 인연이 되는 것이다. 마치 내가 걷는 이 길에서 내 걸음 뒤로 황무지가 꽃밭이 되는 만화적인 상상을 하듯 내 걸음 전의 세상은 내 걸음 후의 세상과 확연히 다름을 느낀다. 그러한 인연을 거듭하고 쌓다 보면 어느덧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즈음 되어 적당한 곡차와 함께 한다면 carpe diem을 잊을만한 가치와 함께 오묘한 카타르시스에 젖을 수 있다. 내 경우 모든 일정을 마치고 전라남도 나주 노안 이슬촌이라는 아주 조그마한 촌에서 여행을 마무리하고 점빵에서 그 동네 분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이런 감정경험을 할 수 있었다. 신 김치에 두 명에서 시작된 점빵주막에 시간이 지나고 많은 사람이 모였고 막걸리를 이미 마실 대로 마셔 꼭지가 돌아버린 나는 잠시 뒤켠으로 나와 담배 한 대를 몰아쉬며 그 동안의 일들에 대해 간단하게 생각 하였다. 힘들었던 일, 즐거웠던 일, 고마웠던 이, 모든 것이 주마등 흐르며 이슬이 내릴 시간도 아니었지만 내 신발 끝은 촉촉해 졌다. 그리고 나서 생각했다. "아 모든 것이 여정의 일부였어" 돌아와 평상에 앉아 세상 그렇게 좋을 수 없는 웃음을 지으시며 여행은 어땠냐고 물으시는 할아버지께 대답했다. "좋았어요" 그러곤 막걸리 한 사발 또 마시고 정신을 놓아 버렸다.

이번 여행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 하자면 출발지는 서울, 목적지는 광주였으며 여행기간 총 3주중에 걸으면서 걸린 시간은 2주에서 이틀을 더한다. 처음치고는 부지런히 빨리 걸은 편이라 생각한다. 루트를 간단하게 소개해 보자면 서울-경기도-충남-전북-전남 순이다. 자세한 도시를 소개하지 않는 이유는 도보여행을 계획하면서 얻었던 모든 루트에 관한 정보는 여행 중반까지 나를 압박하는 족쇄가 되었을 뿐더러 여행이 주는 자유로움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숙박은 대부분 얻어서 해결했고, 끼니는 숙박이 허락된 집에서 역시 얻었다.

무조건 무전을 고집한 것은 아니고, 돈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면 썼다. 숙박문제를, 숙박이 허락되면 끼니는 자연스레 따라왔다. 술과 고기도 몇 번 얻어먹었고 잠도 비교적 잘 자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을 보면 "길"에서 내쳐지지는 않은 것 같아 감사하다. 아니 오히려 행복했다고 말할 만하다. 걸음을 멈춘 지 몇 주가 지난 지금도 간혹 고즈넉한 가을녘 어느 길에서 걸음을 걷고 있는건 아닌지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나에게 허락된 이 담백하고도 맛깔난 기억은 아주 특별한 색으로 스며들어 익숙한 향기를 풍기며 다시 날 부르고 있다.

“오늘은 어디까지 갈까?”

Posted by bassa

Back in Seoul

 | 단상
2008. 10. 26. 01:23

서울로 돌아왔다.

그것도

ktx타고 !!!




와핫!@!

현대문명의 힘을 느끼며 약간의 경의와 짜증을 섞었다.

2주 넘게 걸려서 갔는데 2시간만에  돌아오다니...
 
게다가~!!    ktx안에서 본 풍광은 정말 시시했다.

걸을땐 그렇지 않았는데... 흐음...



돌아와서 미사를 하고 식구들과 약간의 담소 후

맥주를 마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집으로 돌아와 맥주 한 캔과 자주보는 디스커버리 채널로 고고싱!!


내가 제일 좋아하는...

man vs wild

deadliest catch 

요 둘이 연달아 방영중 이었다. 


전자는 연출여부로 잡음이 많아 다소 심드렁 했지만...

후자는 여전히 괄약근을 조이게 만들었다.



여행이 끝나고

별 일도 아닌데 소문내고 칭찬듣느라 높아진 내 콧대를

간단하게 대패질 할 수 있었다.



돌아올 곳이 없다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듯

돌아오니 기쁘고 편하다.

반면에 아직도 간혹 멍 하고

길 위에서 허덕이는 듯 하다.

길 위에서 수천번이고 걸음마다 나를 책망했던 어쩔 수 없이 떠오르던 그 말

"내가 왜 이걸 하고있지?"

애초에 길이 답을 주지 않으리라고 예상했던 바

날카로운 답은 없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길바닥 이었지만

오늘은 집이야.

게다가 나는 지금 한캔 마시고 있잖아?


그걸로 됐다.



어느날 아침 여덜시경 예산 어디메 버스정류장에서 정말 맛있었던 사과를 씹으며

더이상 새로움에 발 내디디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달콤한 기억을

잊지 않아야 한다.







Posted by bas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