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오래간만이야.
이 시간에 혼자 깨어있다니.
어제가 되어버린 오늘의 피곤과
오늘이 되어버린 내일에 대한 기대의 묘한 공존이 이루어지는 새벽 .....
오래전 사진 우려먹기
시작
"타박타박"
"아… 발을 끌지 않아야 하는데… 안 그럼 물집 잡힐 텐데…"
부어오른 왼쪽 발목 때문에 걷는 리듬이 깨졌다. 잠시 쉬어갈 겸 발이나 식히기로 했다.
아무도 없는 버스 정류장에 앉아 양발을 풀고 망중한에 빠진다.
가끔 지나는 차 소리 빼고는 지나치게 고요하다.
"이 동네 할머니들은 장보러 안가시나…?"
혼자 소리 내어 말하고는 이내 입을 닫고 빨개진 발바닥을 본다.
홍두깨로 백대는 맞은 것처럼 발바닥이 울그레 풀그레 한다.
누렇게 익어 고소하고 푹신한 카스테라 더미처럼 보이는 논을 바라보며 걸리버가 되어 눕는 상상을 한다. "쩝쩝" 입맛도 다시고 꺼끌한 입안을 미지근한 물로 게웠다.
"그럼 다시 가볼까"
올 초가을 국도를 걸었다. 누가 떠민 것도 아니고 꼭 그래야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가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그것은 조금 거창하게 말해서 ‘사명’이 되었다. 그리하여 올해 하반기에 계획되어 있던 모든 일정을 정리하고 겁도, 준비도 없이 무작정 집 대문을 나서 줄곧 걷기 시작하였다. 처음 며칠은 의욕이 넘쳐 육체적인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탓에 머릿속은 온통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고 평소에 접하지 못하였던 생경한 풍경과 경험들에 대해 차분하게 묵상할 수 있었다. 그 중 몇을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의 장면으로…
3년 전 어느 날 검도를 마치고 선배와 함께 버스에 올랐다. 겨울 무렵이었는데 버스엔 여기저기 삶의 변주를 끝마치고 난 악기들과 같은 모습의 사람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선배와 나는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이야기들은 모두 청춘의 고단함으로 귀결 되었다. 선배는 이야기 했다. "여기 버스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살아있는 것 같니?" 이야기를 듣고 버스안의 잿빛 풍경을 무신경하게 바라보고 대답했다. "겉으로 보기엔 그러네요…" 당시 버스에 타고 있던 분들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이야기 이지만 그 순간 내 눈에 비친 버스는 그 자체가 하나의 미완의 조각인양 무미하였다. 둘은 이내 입을 굳게 다물었고 우리 역시 돌덩이가 되어 무미한 풍경에 동화 되었다. 서울에 온 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드는 생각이었지만 그 순간 서울이 참 싫었고 그곳에 발 디딘 내가 싫었다. 흐린 구름사이로 겨우 새어드는 빛이 고맙기는커녕 저주스러웠다. 그저 어느 하루의 우울로 치부해 버리기엔 도시는 사람들의 얼굴에 자주 날카로운 직선의 차가움을 옮기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너무도 매끄러워 돌기하나 찾기 힘든 플라스틱 뭉치에서 나는 그 돌기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 역시 스스로 돌기임을 자처한다. 하지만 그 돌기도 결국 플라스틱 뭉치에서 발견한 고춧가루 하나 정도의 맵고 끈적함을 지녔을 뿐이다. 특별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인간의 존재감을 고취시킨다면 나는 그것에 집착했으나 결국엔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하였다. 내 주변엔 돌기들 천지였고 자잘한 돌기들이 모여 평평해져버려 결국 난 그것을 녹이지도 못한 채 묻혀 버렸다.
하지만, 무한의 억겁이 창조해낸 자연이 압도하는 힘은 내가 감당하거나 측량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루 종일 걸어도 질리지 않는 풍경은, 결국 내가 걸어온 길이 지도에서 측정하기 힘들 정도로 미미하다는 절망감 속에서도 언제나 나를 껴안았고 하나의 풍경으로 받아들여 주었다. 여행 초반의 빨리 족적을 남기고픈 가냘픈 욕망은 뚝뚝 흐르는 땀방울에 삭고 살랑이는 바람에 찢겨 이내 형체를 감추었고, 나는 그저 하나의 풍경으로 평범하지만 압도적인 장면 속에 하나의 점으로 소실되어 그것 속에 빨려들었다. 한 발짝 한 발짝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 의미도 없는 그 걸음에 대해 자연과 자연 속의 길은 어떤 것도 의미 없는 것 없다고 말하는 듯 가슴을 열어보여 주었다. 그리고 난 그냥 그 자리에 있으면 그걸로 족했다. 그것은 새로운 의미의 촉매였고 자그마한 발화였다.
몇 개의 선
사람은 심적으로 유약해지면 표징들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길 위에서 철저하게 약자였던 나 또한 몇 가지 표정에 집착했다. 예를 들면 도로에 나 있는 표지판이랄지, 잠을 청할 교회나 성당의 비죽 솟아있는 교회나 성당의 첨탑, 그리고 죽죽 그어진 차선이 그랬다. 특히 차선이나 국도의 경우 갓길이 많아 도보 여행자에게 여유를 허락하지만 지방도로의 경우 갓길이 흔치 않아 걸으면서 이 선에 신경을 세워야 한다. 특히 여유가 없는 도로에서 커브라도 만날라 치면 차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기도가 절로 나온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차들이 알아서 잘 피해가기 때문에 그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아침안개가 낀다거나 하는 경우 매우 곤란하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었는데, 서천에서 군산으로 넘어가는 아침에 손전등을 들고 2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 길을 걸으며 안개등이 다가올 때 마다 흠칫거리며 풀숲으로 뛰어드는 유난을 떨었던 적이 있다. 그렇게 안개를 헤쳐 나가다가 차가 오는 바람에 풀로 발을 디디는 순간 물컹한 것이 밟혀 소스라치게 놀랐다. 방금 로드킬에 당한 듯한 동물의 시체를 밟았던 것이다. 순간 너무도 당황해 뛰다시피 자리를 벗어나고 말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날 아침 그 동물이 나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쭈뼛 돋았다. 여행의 후반부엔 너무도 많은 로드킬을 봐서 무덤덤해 졌지만 발밑의 감촉을 상상해 볼 때면 지금도 자릿하다. 도보여행의 위험에 대해 말하려는 건 아니다. 그리고 반반한 배우가 나와서 "먹어보면 딱 한우인지 알죠" 라고 말하는 병신육갑치는 캠페인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날 이후 몇 번이고 그 감촉을 떠올리며 날 이 길로 나오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몇몇 떠나간 이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의 감정의 선을 넘어 육으로 떠나간 이들과 내가 말의 선을 넘겨 마음 안에서 죽여 버린 몇몇 이들… 내가 차를 피하며 밟았던 풀숲에서 흠칫 거리며 뛰어오르는 메뚜기들을 보면서 미안하다. 미안하다 몇 번이고 되뇌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 선은 어디까지 일까? 그 깊이, 그 넓이를 조심스레 가늠하며 천천히 경계의 확장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과 사람
길을 걸으며 얻는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는 바로 사람과의 만남일 것이다. 혼자 걷는 일이 생각보다 녹록치 않고 고되기에 지인으로부터의 연락이 더없이 정겨워 지는 것은 물론이거 니와 우연한 만남과 대화는 짜릿한 즐거움을 준다. 주로 사람을 만나게 되는 장소는 잠자리와 버스 정류장인데, 내가 누구이며 왜 길을 걷는지 등의 다소 귀찮은 초반의 통과의례를 거치고 나면 간단하게나마 서로를 알게 될 기회가 생긴다. 대화중 가장 기분 좋았던 내용은 "사우 삼고 싶네~" "이쁘게 생겨가지고 왜 고생이여~" 이 정도이고, 가장 맥 빠지게 했던 내용은 “요새 젊은 것들은 놀기를 좋아해서 탈이여~ 십 원짜리 한 장 나오는 것도 아닌데 뭣 헐러 그 지랄을 해~” 이 정도였다. 하지만 시골 어르신들은 보통 따뜻한 눈길로 핀잔을 주시기 때문에 저 정도는 웃어넘길 수 있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손주들 자랑, 장에서 사온 물건들 구경, 나의 안부를 걱정해 주시는 따뜻한 말씀을 듣노라면 걷는 도중 솟는 치열함은 이내 부드러움으로 바뀌고 만다. 종종 안타까운 사연도 듣고 있으면 마음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고는 하지만 어르신들의 주름어린 웃음이 "이정도 살았으니 그런 일 정도는 괜찮아"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 그걸로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내 외로움에 지치고 곤궁해져 이 걸음을 멈추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면, 걸음을 멈춘 지금 그 분들이 더없이 소중해지고 진정 마음에서 우러난 감사가 떠오른다. 이 자리를 빌어서 길에서 해매는 나를 도와주시고, 이야기 해주시고, 재워주시고, 따듯한 밥 지어주시고, 그것도 모자라 가는 길 먹으라고 몇몇 먹을거리를 챙겨주시기까지 한 많은 분들께 고마운 마음 가득하다.
신의 달력
예전에 ‘신의 달력에는 오늘만 있고, 악마의 달력에는 어제와 내일만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제와 내일이 오늘을 사는 것에 전혀 도움을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후회와 두려움에 약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carpe diem" 현실을 직시하고 즐긴다는 것,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더욱 유명해진 이 말은 이미 많은 젊은 사람들의 메신저 아이디로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하디흔한 일종의 클리셰가 되었다. 그 정확한 이유를 꼬집어 말하기 힘들지만, ‘현실을 즐긴다’는 의미가 ‘현실을 직시한다’는 의미에 앞서느라 그저 빛 좋은 개살구 정도가 되어버리지 않았나 싶다.
사실 길을 걷는 것만큼 carpe diem 할 수 있는 일도 드물다. 사방은 고요하고 혼자 끝이 없는 길을 걷다가 버스 정류장에서 휴식을 취할 때, 나에게 길을 걷는 이유가 오직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것 밖에 없었다면 오는 버스를 뿌리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길을 걷는다는 의미는 목적에 도달하고자 하는 그것과 다르다. 힘에 부쳐 길바닥만 보며 걷다가 무심결에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이는 풍경들, 오가며 만나게 되는 사람들, 그리고 내 안에서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상념들, 이 모든 것과 인연이 되는 것이다. 마치 내가 걷는 이 길에서 내 걸음 뒤로 황무지가 꽃밭이 되는 만화적인 상상을 하듯 내 걸음 전의 세상은 내 걸음 후의 세상과 확연히 다름을 느낀다. 그러한 인연을 거듭하고 쌓다 보면 어느덧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즈음 되어 적당한 곡차와 함께 한다면 carpe diem을 잊을만한 가치와 함께 오묘한 카타르시스에 젖을 수 있다. 내 경우 모든 일정을 마치고 전라남도 나주 노안 이슬촌이라는 아주 조그마한 촌에서 여행을 마무리하고 점빵에서 그 동네 분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이런 감정경험을 할 수 있었다. 신 김치에 두 명에서 시작된 점빵주막에 시간이 지나고 많은 사람이 모였고 막걸리를 이미 마실 대로 마셔 꼭지가 돌아버린 나는 잠시 뒤켠으로 나와 담배 한 대를 몰아쉬며 그 동안의 일들에 대해 간단하게 생각 하였다. 힘들었던 일, 즐거웠던 일, 고마웠던 이, 모든 것이 주마등 흐르며 이슬이 내릴 시간도 아니었지만 내 신발 끝은 촉촉해 졌다. 그리고 나서 생각했다. "아 모든 것이 여정의 일부였어" 돌아와 평상에 앉아 세상 그렇게 좋을 수 없는 웃음을 지으시며 여행은 어땠냐고 물으시는 할아버지께 대답했다. "좋았어요" 그러곤 막걸리 한 사발 또 마시고 정신을 놓아 버렸다.
끝
이번 여행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 하자면 출발지는 서울, 목적지는 광주였으며 여행기간 총 3주중에 걸으면서 걸린 시간은 2주에서 이틀을 더한다. 처음치고는 부지런히 빨리 걸은 편이라 생각한다. 루트를 간단하게 소개해 보자면 서울-경기도-충남-전북-전남 순이다. 자세한 도시를 소개하지 않는 이유는 도보여행을 계획하면서 얻었던 모든 루트에 관한 정보는 여행 중반까지 나를 압박하는 족쇄가 되었을 뿐더러 여행이 주는 자유로움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숙박은 대부분 얻어서 해결했고, 끼니는 숙박이 허락된 집에서 역시 얻었다.
무조건 무전을 고집한 것은 아니고, 돈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면 썼다. 숙박문제를, 숙박이 허락되면 끼니는 자연스레 따라왔다. 술과 고기도 몇 번 얻어먹었고 잠도 비교적 잘 자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을 보면 "길"에서 내쳐지지는 않은 것 같아 감사하다. 아니 오히려 행복했다고 말할 만하다. 걸음을 멈춘 지 몇 주가 지난 지금도 간혹 고즈넉한 가을녘 어느 길에서 걸음을 걷고 있는건 아닌지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나에게 허락된 이 담백하고도 맛깔난 기억은 아주 특별한 색으로 스며들어 익숙한 향기를 풍기며 다시 날 부르고 있다.
“오늘은 어디까지 갈까?”